노래하는 여자, 노래하지 않는 여자 (L'Une Chante, L'Autre Pas, 1977), 아녜스 바르다 영화


    바로 어제,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이 났다.

    직설적이고 거칠고, 거리낌없이 쭉쭉 뻗어나가는 영화였다. 미치게 웃긴 장면도 많았는데 관객 반응도 좋아서 더 즐겁게 감상했다. 
    특히 어떤 말을 들어도 즉각적으로 받아치는 폴린의 비현실적이기까지 한 핑퐁이 압권이었다.

    (아빠한테 뺨 맞았을 때)
    - 더 때려. 그 알량한 권력으로 나를 때릴 수 있는 시기도 얼마 남지 않았으니까 지금 마음껏 때려.


    (아빠한테 거짓말하고 돈 받아서 친구 낙태비용 대준 거 들켰을 때)
    - 안 그래도 이제 참는 것 그만하려고 했어. 이제 그만할 때가 됐어. 이 집을 나갈거야.
    - 어디 가서 돈 한 푼 못 받고 쫓겨났다는 말은 하지 말아라. (돈 줌) 이 돈으로 반 친구들 모두 낙태나 하렴.
    - 비용이 얼만지도 모르면서. 어쨌든 돈은 고마워.


    (임신한 폴린이 신곡 부르다 관객한테 지적받았을 때)
    - 저는 제가 여성으로 느끼고 생각하는 것을 음악으로 표현하죠... 아이를 무조건 낳아야 한다는 게 아니라 법이나 사회의 강요에 휘둘리지 말자는 거에요.


    그냥 생각나는대로 쓴 거라서 모두 부정확한 대사이다...
    나도 저렇게 말하면서 살 수 있다면 좀 더 살만할텐데 하고 생각했다. 





    뜬금없이 나레이션으로 주절주절 설명하고선 10년 후... 가 뜬다거나 툭툭 튀는 편집점 이런 것들까지 쿨하고 멋졌다. 폴린이 부르는 모든 노래들이 마음을 울렸다. 강을 건너면서 낙태하는 여자들의 노래를 부를 때에는 눈물이 났다.

    오프닝에 나오는 흑백 인물사진 시퀀스가 무척 강렬했고 영화 내내 그 사진들이 종종 생각났다. 그들과 성심성의껏 작별을 나누고 사진을 북북 찢던 남자를 생각하면서 웃었다.

    사람들이 좋아졌고 더 좋아할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
    서울아트시네마 말고...
    여름에 또 다른 데에서 아녜스 바르다 상영한다고 한다.
    전주국제영화제에서는 아녜스가 말하는 바르다의 마지막 영화 상영.


페스코 -

육류 소비를 줄이려고 했지만 그런 마음을 먹는 것만으로는 실천하기가 어려웠다. 육식이 일상에 깊이 스며들어 있어서 사실상 아무것도 바뀌지가 않았다. 자책감에 젖은 채 고기를 씹는 이상한 날들이 계속되면서 아무래도 안 되겠다 싶었다.

페스코를 시작했다. 한 달 정도 지났고 아직 시행착오를 겪고 있다. 주변에도 반쯤은 알리고 반쯤은 숨겼다. 내 선에서 무리하게 하지도 엉망진창으로 하지도 않으려고 한다. 고기를 먹지 않지만 육수는 때에 따라 먹는다. 라떼를 끊었고 먹고 싶을 때는 두유를 찾아 먹는다. 해산물이나 다른 것들도 조금씩 줄이려고 한다. 실천은 부끄러운 정도이지만 그래도, 비건을 지향한다.

당장 지금 시작할 수 있는 작은 일들을 부담 갖지 말고 해보기로 했다. 느슨함을 생각하니 어려웠던 변화가 쉽게 시작됐다. 고기를 먹을 때마다 기분이 안 좋았는데 고기를 안 먹으니까 한결 나아졌다. 너무 기쁘다. 나는 더 나아질 수 있다. 

고기는 안 먹는데 해산물 먹는 건 되고, 계란과 우유도 되나? 그게 고기보다 낫다고 할 수 있나? 다 안 먹고 싶은데 내가 그렇게 살 수 있나? 그렇게 살면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과 불편한 대화를 더 해야하지? 이런 생각만 하다가 긴 시간을 흘려보냈다. 시작하고나니까 내 식단에 고기가 사라지고, 해산물이나 유제품이 늘더라도, 채소의 비율이 높아진 것만으로도 의미 있다고 생각한다.

플라스틱 빨대를 포기했을 때의 불편함의 크기에 비해 얻어지는 효과는 너무 미미하다는 글을 SNS에서 보았다. 무슨 말인지 너무 알겠고 내가 늘 하던 류의생각인데 이제는 그런 생각에 크게 관심두지 않는다. 내가 편리하게 망쳐버리고 있는 다른 모든 것들이 얼마나 많을지 무섭지만, 생각하다보면 존재 자체가 그렇게 되고말지만, 그렇기 때문에 불편함이 이젠 별로 너무하거나 무력하게만 느껴지지 않는다. 적어도 적어도 지속적으로 고개를 돌리지는 않기로 했다.

강간카르텔 -





모든 남자가 역겹고 잠재적 범죄자라고 생각하고 이게 합리적인 사고과정이라고 생각한다. 그냥 신뢰가 바닥을 뚫고나간 상태이고 회복의 ㅎ도 상상하지 못했다.

노래방물뽕 성추행 피하다 추락사 승리 버닝썬 경찰 정준영 단톡방 불법촬영 영상공유 온통 강간 그리고 한가지 짚고 넘어갈 것은 이걸 남녀대결구도로 보는 시각은 위험하지요? 검색어 1위는 정준영 동영상이고요.

너무 무심하게 스쳐지나간 많은 미심쩍은 농담과 분위기와 문화... 방송에서 공공연히 언급되는 범죄. 우리는 원래 이런 곳에 살고 있었는데.

인터넷으로 그놈의 국민청원에 청원하고 하루종일 인상 쓰면서 핸드폰 본다. 다 죽어버려


내가 피해자 영상 보기 싫어요 라고 말해야 하나요



스마트 국민제보

13번째 증언
http://naver.me/FECqGADf



걱정 -

어젯밤 꽐라가 되어 길바닥을 헤매는 친구를 건지려 애쓰는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꽐라에게 재워달라는 연락이 왔는데 데리러 가겠다 해도 위치를 알려주지 않고 택시도 타지 않고 도통 말이 안 통하니 어찌할 바를 모르다가 나한테 전화를 한 것이다. 결국엔 어찌어찌 잘 데려가 마무리됐는데 한번 불안한 마음이 들쑤셔지니 밤새 심란했다. 자기 몸과 마음을 아끼는 단단함이 있다고 더 나빠지거나 좋아지거나 할 수는 있어도 그것만은 확실하다고 믿어 의심치 않지만 자기파괴적인 모습을 보일 때 정말 어떻게 해야될지 모르겠다. 어디로 튈 지 몰라서 어떻게 대해야할지 모르겠고 걱정되고 화가나고 무엇보다 불안하다. 그리고 내가 이런 슬픔과 거리가 멀어져서 더 모르겠다. 내가 하는 모든 말이 공허하고 의미없게 들리고 감당할 수 없다. 남의 슬픔을 어루만질 수 없다. 내 걱정이 조금도 가닿지 않는다는 것이 느껴진다. 게다가 이런 사실은 알려봤자 부담만 된다. 확대해석과 무심함 사이를 오락가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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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실장님이 친절하게 대해주고 밥도 사줬다. 그랬더니 오히려 나는 꽤 우울해졌다. 나를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게 느껴졌는데 그걸 내가 실패로 만든 기분이었기 때문이다. 내 생각과 마음을 소리내어 말하지 못하는 게 바보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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